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공부했더라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아예 다른 일을 선택했다면.
아마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다시 돌아가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수많은 선택 중에는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가끔 떠올리면 ‘그때 왜 그랬을까’ 싶은 것도 있다.
그런데 정말 과거로 돌아가 그 선택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선택을 바꾼 뒤의 인생을 실제로 살아볼 수 있다면?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바로 이 흥미로운 질문에서 시작하는 소설이다.
한국어판은 노진선이 옮겼고 인플루엔셜에서 출간됐다. 주인공 노라 시드는 삶의 여러 상실과 실패가 겹치면서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도착한다. 그곳의 책들은 노라가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살았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인생을 담고 있다.
처음 이 설정을 알았을 때부터 궁금했다.
나라면 어떤 책부터 꺼내볼까?
후회가 책으로 가득 꽂혀 있는 도서관
주인공 노라는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사랑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가족과의 관계도 만족스럽지 않다. 일도 뜻대로 되지 않고 소중한 존재까지 잃는다.
하나만 힘들어도 버거운데 여러 일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노라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느낀다.
결국 삶을 포기하려 했던 노라가 눈을 뜬 곳이 바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다.
그리고 그곳에서 학창 시절 자신에게 특별했던 사서 엘름 부인을 만난다.
도서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꽂혀 있다.
그 책 한 권 한 권에는 노라가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 펼쳐졌을 또 다른 인생이 담겨 있다. 노라는 자신이 후회했던 선택을 바꾼 삶을 하나씩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설정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 않은 길’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사람은 현재가 힘들수록 과거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때 그 선택만 했으면 지금 훨씬 행복했을 텐데.”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좋은 면만 상상한다.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행복했을 것 같고, 그 직업을 선택했다면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것 같고, 그때 다른 도시로 떠났다면 지금보다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인생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다른 이유로 힘들었을 수도 있다.
꿈꾸던 직업을 얻었지만 그만큼 잃어야 하는 것이 있었을 수도 있다.
돈은 많아졌지만 외로웠을 수도 있고, 성공했지만 정작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노라도 여러 삶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하나씩 알게 된다.
내가 멀리서 바라볼 때 완벽해 보였던 인생과 그 안에서 직접 살아보는 인생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 부분이 참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왜 지나간 선택을 후회할까
후회라는 감정은 참 이상하다.
이미 바꿀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생각한다.
“그때 조금만 참을걸.”
“그때 그냥 해볼걸.”
“그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걸.”
“조금 더 잘해줄걸.”
하지만 우리는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경험과 지혜를 요구한다.
지금의 나는 결과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결과를 몰랐다.
그 순간 내가 알고 있던 것, 내가 느끼고 있던 감정, 내가 처했던 상황 안에서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나고 나서 보면 잘못된 선택처럼 보여도 그 당시에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지나간 선택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왜 그랬을까’보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고 생각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좋아 보인다
요즘은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쉬운 세상이다.
SNS를 열면 다들 행복해 보인다.
좋은 집에 살고,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만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아니다.
가장 보여주고 싶은 순간 몇 장면일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하이라이트와 내 평범한 일상을 비교한다.
그러니 내 인생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삶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고민이 존재한다.
결국 완벽한 인생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해도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행복은 조건이 완벽해진 다음에 오는 걸까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것만 해결되면 행복할 텐데.’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걱정거리가 없어지면.
일이 잘 풀리면.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그런데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걱정이 나타난다.
그렇게 살다 보면 행복은 계속 미래로 미뤄진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이것만 끝나면.’
하지만 그렇게 미루다 보면 지금의 하루는 계속 행복하지 않은 날로 남는다.
노라가 수많은 가능성을 경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은 완벽한 조건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완벽한 삶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평범한 하루의 가치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평범한 하루였다.
우리는 특별한 날을 기다린다.
여행 가는 날.
좋은 일이 생기는 날.
돈을 많이 버는 날.
무언가를 이루는 날.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 쉬다가 잠드는 날.
그런 날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결국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계속 생기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에서 괜찮은 순간을 발견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
누군가와 먹는 저녁.
반려동물이 옆에 누워 있는 시간.
하루를 끝내고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순간.
너무 평범해서 지나칠 뿐,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꽤 소중하다.
나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갈 수 있다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생각했다.
내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간다면 어떤 책을 꺼낼까?
아마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번 인생을 골라볼 것 같다.
또 다른 책에서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나를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 그때 포기했던 일을 계속한 인생도 궁금하다.
하지만 여러 인생을 경험하다 보면 결국 지금의 삶이 궁금해질 것 같다.
왜냐하면 다른 선택을 한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선택 하나만 달라졌어도 이후의 모든 일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좋았던 일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힘들었던 선택 뒤에 우연히 찾아왔던 좋은 인연과 행복한 순간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참 묘하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일도 인생의 일부였다
살면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일이 잘못되기도 하고, 관계가 끝나기도 하고, 돈을 잃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하지만 몇 년 지나 돌아보면 의외로 그 일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때 헤어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났고,
그 일을 그만뒀기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했고,
실패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고통에 억지로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다.
힘든 일은 그냥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의 실패가 내 인생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으며 그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조금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초반 설정은 정말 좋았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도서관.
수없이 꽂혀 있는 또 다른 인생의 책들.
한 권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그래서 처음에는 판타지적인 재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다만 중반 이후에는 이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어느 정도 예상되기도 했다.
‘결국 현재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겠구나.’
그래서 반전이 계속 이어지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복잡한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노라가 여러 삶을 경험하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결국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늘 선택한다.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같은 작은 선택부터 직업, 결혼, 이사처럼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까지.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길은 평생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아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을 경험하고 가장 좋은 것만 골라 살 수는 없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맞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후회가 남아도.
때로는 다시 시작해도 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나서
책을 덮고 한동안 내 인생의 여러 갈림길을 생각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더 좋은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보다 힘든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제는 가지 않은 길을 너무 오래 바라보기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을 조금 더 잘 살아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가끔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생 전체를 실패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오늘 하루가 힘든 것과 내 인생이 잘못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늘이 엉망이었다면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
올해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다음 해에 또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완성된 모습도 아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을 시작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살아볼 만한 것 아닐까.
아직 읽지 않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 지금 몇 장만 읽고 결말을 결정할 수는 없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지금 너무 힘들어서 네 인생 전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묻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이 참 좋았다.
완벽한 인생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며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이 하루일 테니까.
만약 정말 내 앞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나타난다면 처음에는 신나게 여러 책을 꺼내볼 것 같다.
부자가 된 나도 만나보고 싶고,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나도 궁금하다.
그런데 한참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한 권의 책 앞에 서게 되지 않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
이미 지나온 페이지에는 지우고 싶은 문장도 있고, 다시 읽고 싶은 장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가 훨씬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굳이 책을 덮을 이유가 있을까.
다음 장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나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지나간 선택을 바꿀 수는 없어도 다음 선택은 아직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요즘 유난히 지나간 일이 후회되거나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어쩌면 책을 덮고 난 뒤 자신의 평범한 하루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이라는 책에는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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