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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리뷰

by 지아해피 202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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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리뷰 – 말할 수 있음이 곧 해방이 되는 시간

저자: 은유 | 출판사: 한겨레출판

“당신의 삶이 말해지길, 그 말이 당신을 살리길.”

말하는 여성, 들려지는 삶

『이제야 언니에게』는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글쓰기 교육자이자 작가, 은유의 에세이이자 기록이다. 이 책은 여성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꺼낸 말, 그 말이 자신을 회복시킨 과정을 담고 있다.

'이제야'라는 단어에는 오랜 기다림과 늦은 깨달음, 뒤늦은 용기가 들어 있다. 은유는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순종과 억압, 사회가 강요한 침묵과 해석되지 않았던 고통을 ‘쓰기’라는 방식으로 해방시킨다.

왜 ‘언니’인가

이 책의 제목에는 ‘언니’가 있다. 언니는 누군가를 보살피고 먼저 겪은 사람이며, 때로는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다. 작가는 말한다. “언니는 존재 그 자체로 위로다.” 이 책은 그런 ‘언니들’의 이야기다. 말할 기회조차 없었던 여성들, 이름 없이 살아온 누군가가 드디어 주어를 갖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

은유는 여성들에게 “당신은 괜찮아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는, 온전히 말해질 가치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위로를 넘어선 존중과 인정,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전하는 감동의 본질이다.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의 삶

책에는 성폭력 피해자, 탈북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미혼모, 가정폭력 생존자 등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주류 담론’에서 배제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은유는 이들을 관찰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여성이라 불러온 사람들의 고통은 결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언니에게』는 고통과 연대, 상처와 회복이 동시에 존재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말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쓰기가 삶을 바꾸는 순간

은유는 글쓰기를 단지 표현의 도구가 아닌 ‘존엄의 복원’이라 말한다. 그녀는 글쓰기 수업에서 여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말하게 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말을 꺼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스스로 살아갈 힘을 찾는다.

“말하지 못한 삶은 사라진다.” 작가는 그렇게 말한다. 여성의 말이 공적인 언어가 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나도 쓸 수 있다’는 믿음은 곧 ‘나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그래서 단지 여성의 글쓰기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 증명의 서사’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문장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여성들이 서로를 향해 말하는 장면들이다. 서로의 글에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보내며, “네 이야기를 들으니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어”라고 고백한다.

『이제야 언니에게』는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의 연대’를 기록한 책이다. 말은 관계를 만든다. 서로의 말을 듣고, 자신을 말하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견고해지는 과정. 이 책은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글쓰기는 자서전이 아니라 선언이다

은유는 글쓰기를 통해 여성들이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고 말한다. 슬픔은 고백이 아니라, 저항이 되고, 자기 비하는 성찰이 된다. 그녀는 글쓰기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한다.

“글을 쓰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더는 지워지지 않는다.”

여성의 이야기는 ‘기억되지 못한 역사’다. 『이제야 언니에게』는 그 기억을 다시 불러내고, 말할 수 있음이 곧 존재의 증거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진실한 고백을 경청하는 자리에 초대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말들이 우리 자신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우리가 스스로의 언어를 찾는 계기가 된다.

『이제야 언니에게』는 쓰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읽는 이 역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말하지 못했던 삶, 그러나 말할 자격이 충분했던 삶들에 대해.

추천하고 싶은 이들에게

  •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
  • 여성의 삶과 말에 관심 있는 독자
  • 고통을 말하는 것이 두려운 이들
  • 연대와 회복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

이 책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말과 글이 가지는 힘, 한 사람의 고백이 다른 사람의 언어가 되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마무리하며

『이제야 언니에게』는 말하지 못한 시간을 지나, 이제야 용기를 낸 이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고요한 치유가 된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은, 실은 “이제야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선언을 응원하고, 또 다른 언니에게 그 말이 가 닿기를 소망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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