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들어야만 갈 수 있는 곳, 나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꿈의 백화점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하루 종일 별일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지치는 날.
누가 나를 힘들게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모든 게 귀찮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날.
그런 날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좋은 꿈이라도 꿨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꿈에서는 가능하니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반대로 너무 생생해서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이상한 꿈도 있다.
이미영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바로 그런 ‘꿈’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부터 참 예쁘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처음 제목을 봤을 때부터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꿈을 파는 백화점이라니. 만약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어떤 꿈을 사고 싶을까?
행복한 꿈?
돈을 많이 버는 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꿈?
아니면 아무 걱정 없이 푹 쉬는 꿈?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 찾아오는 특별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현실에서 옷이나 화장품, 가방을 고르듯 다양한 종류의 꿈을 고를 수 있다.
그리고 이 특별한 백화점의 주인이 바로 달러구트다.
이곳에는 다양한 꿈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있고,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별한 꿈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잠이 들면 이곳을 찾아 자신에게 필요한 꿈을 경험한다.
주인공 페니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직장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다.
손님들에게 어떤 꿈을 추천해야 하는지, 꿈을 사고 난 뒤의 대가는 어떻게 지불하는지, 사람들은 왜 특정한 꿈을 찾는지 하나씩 배워간다.
그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다.
판타지 소설이지만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읽다 보면 우리가 매일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 그리움, 불안, 사랑, 상실, 기대, 설렘.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꿈이라는 것이 단순히 잠을 자면서 보는 영상 같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 남아 있는 기억도 있다.
꿈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불쑥 나타난다.
그래서 가끔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이 꿈에 나오면 이상하다.
‘내가 이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나?’
평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꿈에 너무 생생하게 등장하면 하루 종일 그 사람이 생각나기도 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그런 우리의 경험에 아주 사랑스러운 상상력을 더한다.
어쩌면 내가 어젯밤에 꾼 그 꿈도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꿈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재미있어진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따뜻하다는 것이다.
큰 사건이 계속 벌어지고,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숨 가쁘게 읽어야 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읽어도 좋다.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몇 장씩 읽기 좋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른이 되고 나면 현실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된다.
돈 걱정도 해야 하고, 가족 걱정도 해야 하고, 내일 해야 할 일도 생각해야 한다.
잠자리에 누워서조차 머릿속에서는 계속 계산을 한다.
‘내일은 이것부터 해야 하고….’
‘이번 달에는 돈이 얼마나 들어가지?’
‘그때 내가 그렇게 말하지 말걸.’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몸은 침대에 누워 있는데 머리는 계속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달러구트 꿈 백화점』 같은 책을 읽으면 잠시 현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어른도 가끔은 이런 상상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꿈을 사고파는 설정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는 판타지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꽤 깊은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꿈이 모두 행복한 꿈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두려운 상황을 꿈에서 반복해서 경험하기도 한다.
왜 굳이 힘든 꿈을 꾸어야 할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현실도 그렇다.
좋은 경험만으로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했던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던 일이 몇 년 후 돌아보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어 있기도 한다.
그때는 정말 싫었는데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다.
‘아, 그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
꿈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후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 사람에게 조금 더 잘해줄걸.
그때 포기하지 말걸.
조금 더 용기 내볼걸.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을 머릿속에서 계속 다시 살아본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꿈이라는 공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다시 갈 수 없는 장소에 가고,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좋은 꿈을 꾸는 것도 좋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야 하는 곳은 현실이라는 것.
아무리 행복한 꿈을 꾸어도 아침이 되면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꿈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곳이 아니라 현실을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쉬게 해주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현실이 힘드니까 꿈속에서라도 행복하세요.”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힘들었지?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내일 다시 살아가자.”
이런 말을 건네는 느낌이었다.
페니라는 인물도 좋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직장에서 하나씩 배우고 실수도 하면서 성장한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그렇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투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어설퍼 보이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괜히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익숙해진다.
예전에는 어렵던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내가 설명해주고 있는 순간도 온다.
페니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일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그런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달러구트라는 인물 역시 인상적이다.
뭔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다.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어른 같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한 명쯤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괜찮아. 조금 더 지켜보자.”
라고 말해주는 사람.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이 정말 필요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은 꼭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냥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역할을 한다.
뭔가 대단한 인생의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을 ‘힐링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밤에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잠들기 전 휴대폰을 내려놓고 몇 장씩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낮에 정신없이 읽는 것보다 조용한 밤에 읽었을 때 이 책의 분위기가 더 잘 느껴졌다.
책을 덮고 나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오늘 밤에는 어떤 꿈을 꾸게 될까?’
그리고 내가 정말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갈 수 있다면 어떤 꿈을 고를지도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당연히 엄청 행복한 꿈을 고를 것 같았다.
복권에 당첨되는 꿈도 좋고, 멋진 여행을 떠나는 꿈도 좋고, 아무 걱정 없이 웃고 있는 꿈도 좋겠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의외로 아주 평범한 꿈을 고를 것 같다.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별일 없이 밥을 먹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그런 꿈.
젊을 때는 특별한 일이 생겨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곳에 여행을 가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큰 성공을 해야 행복한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된다.
누구 하나 아픈 사람 없고, 큰 걱정거리 없고,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침대에 누울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매일 지나치고 있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비싼 꿈인지도 모르겠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았던 감정도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것이구나.’
물론 매일 행복할 수는 없다.
짜증 나는 날도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고, 괜히 미래가 걱정되는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정말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하루도 결국 지나간다.
그리고 밤이 온다.
우리는 잠이 들고, 아침이면 다시 눈을 뜬다.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단순히 ‘꿈을 파는 신기한 백화점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아까운 책이었다.
판타지라는 예쁜 포장 안에 우리의 현실적인 감정들이 꽤 많이 들어 있다.
후회하는 사람, 그리워하는 사람,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사람, 자신감을 잃은 사람.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손님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그런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갈 힘을 얻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주 강렬한 충격이 남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 은은하게 오래 남는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난 뒤처럼 마음 한쪽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
그래서 요즘 마음이 복잡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고, 편안하게 읽으면서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오고 싶은 사람이라면 잘 맞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걱정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밤 잠들기 전에 한번 상상해 보면 좋겠다.
눈을 감고 잠이 들면 어디선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진열대에는 오늘 새로 들어온 꿈들이 놓여 있고,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어떤 꿈을 추천할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곳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꿈이 딱 하나라면 나는 어떤 꿈을 선택할까?
아주 오래전 행복했던 하루?
보고 싶은 사람과 다시 만나는 꿈?
아직 이루지 못한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는 꿈?
아니면 아무 걱정 없이 깊이 잠들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꿈?
책을 덮고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가 조금 힘들었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하고 싶다.
꼭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인생의 정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
그냥 페니를 따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천천히 구경하다 보면 된다.
그러다 졸리면 책을 덮고 잠들면 된다.
어쩌면 그날 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꿈 백화점에 들러 꼭 필요한 꿈 하나를 받아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지친 어른들에게 잠시 어린아이처럼 상상할 시간을 주는 책이었다.
현실을 바꿔주는 책은 아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책.
오늘 밤에는 나도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한번 들러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거창한 꿈보다 이런 꿈 하나를 주문하고 싶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오늘보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꿈으로 주세요.”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꿈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