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솔직히 웃음이 났다. 너무 극단적인 감정과 너무 일상적인 욕망이 어색할 정도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 뒤에 슬며시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 말 안에는 어쩌면 우리가 다들 매일같이 겪고 있는 모순적인 삶의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밤새워 읽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치 누군가가 내 마음속을 대신 말해주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단순한 우울증 체험기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언어를 잃어버린 이들을 위한 조용한 대변이며, 자기 자신을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인사다.
‘그냥 괜찮은 척’하고 살아왔던 나에게
이 책의 저자 백세희는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라는 경계선 우울증을 앓으며,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그 상담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정리해 이 책에 담았다. 책을 펼치면 전문적인 심리학 이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멋진 문장이나 해답 같은 것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마주하며, 상담사와 주고받은 “진짜 감정”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놀라운 건 그 '날 것'의 기록들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괜찮은 척, 멀쩡한 척, 바쁜 척하느라 정작 내 마음은 오랫동안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그랬다. “다 괜찮아”, “이 정도쯤은 견뎌야지”, “이런 걸로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라는 말을 마음속에 수없이 되뇌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르게 된다.
감정은 죄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연습에 대한 부분이었다. 백세희는 늘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눌러왔다. “예민한 것 같아서 말 못 하겠어요”,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성격이니까요”, “내가 이해해야죠.” 하지만 상담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럴 필요 없어요. 감정은 죄가 아니에요.”
이 짧은 문장이 가슴을 세게 때렸다. 나 역시 내 감정을 늘 ‘과한 것’,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해왔다. 무언가 불편하거나 서운해도, 그냥 넘겼다. 말하면 상처 줄까 봐, 싸움 날까 봐, 혹은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하지만 그렇게 쌓인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결국 내 안에서 부패하고, 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또는 이유 없는 불안과 짜증으로, 나도 모르게 표출된다.
이 책은 말한다. 감정은 억눌러야 하는 게 아니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불안, 서운함, 외로움, 수치심, 다 이유 있고 정당한 것이라고. 그래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살고 싶은 이유가 먹는 것 하나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고백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겠다는 고요한 의지</strong처럼 들린다.
삶이 버겁고 무거운 날들 속에서
이 책에는 어떤 해결책이 없다. ‘이렇게 하면 좋아질 거예요’ 같은 말은 없다. 대신 그 안에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strong이 있다.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느끼고, 말로 꺼내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이 책은 말없이 알려준다.
책을 읽으며 나도 내 감정들을 꺼내 보았다. 참았던 서러움, 비교당했던 순간의 모멸감,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외로움.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결코 이상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 감정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껏 버티고 살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떡볶이’ 같은 이유 하나라도 있다면
책 제목은 어쩌면 유쾌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무겁고 간절하다. “죽고 싶지만, 그래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 어쩌면 그 말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아주 작고 소박한 이유 하나로도 다시 살아보고 싶다.”
그게 떡볶이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노래, 고양이, 햇살, 혹은 오늘 누군가 건넨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이유가 ‘작아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가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라는 점이다.
이 책이 꼭 닿았으면 하는 사람들
이 책은 아래의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 요즘 이유 없이 자주 우울해지고 무기력한 사람
- 누군가에게 감정을 털어놓기 어려운 사람
- 정신과 상담이 부담스럽지만 감정의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
- 누군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조용히 다가가고 싶은 사람
이 책은 공감과 위로의 언어를 잃은 사람들에게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손길이다.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고, 힘들다고 해도 괜찮고, 죽고 싶다고 느낄지라도 여전히 살아 있는 나를 인정해 주는 책이다.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낼 수는 있다
책을 덮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이대로는 살기 힘들다는 말이었구나. 그러니까 내 안의 작고 사소한 기쁨, 나를 웃게 했던 것들, 그 작은 것들이야말로 나를 삶의 자리로 붙잡아주는 힘이었다.
오늘도, 떡볶이처럼 아주 사소한 이유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하루 속에서 버티고, 견디고,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
그 문장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가장 가까운 문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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